인도에서 여행할 때 이야기다.

새벽에 델리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 도시의 냄새가 난다. 특유의 향과 습한 바람이 덮쳤다. 그 향은 도시에서 간간히 계속 맡을 수 있었는데 향신료의 향 같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도 나는 것으로 봐서 암내 같기도 했다. 향신료를 먹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체취 같기도 했다. 이 냄새와 함께 나의 시야에 각인된 것은 큰 부처님 손과 파란색 삼성 로고 였다. 한 손으로 장풍을 쏘는 형상의 부처님 손 몇개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시야 약간 위쪽에 기를 뿜어내듣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새벽에 도착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누울 곳을 찾다가 한국 사람인 것으로 보이는 대학생쯤 될 나이의 사람을 만났다. 홀로 여행온 여학생이 한명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날이 밝으면 같이 나가기로 하고 각자 몸을 뉘일 자리를 찾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리속으로 공항을 나서며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택시를 잡아야 하고 사기가 많다고 하니 조심해야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날이 밝았다. 한국학생과 통성명을 하고 빠하르간지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빠하르간지는 배낭여행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학생은 빠하르간지에서 하루 있을 것이라고 하고 나는 오늘 다른 도시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택시 플랫폼으로 얼른 달려올라섰다. 택시를 잡고보니  그 택시는 백미러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택시중에 절반 정도는 백미러가 안보였다. 택시가 달리면서 안 사실이지만 와이퍼도 없었다. 그럼에도 고속도로를 달리며 이리저리 방향전환을 잘했다. 어떻게 뒤를 보는지 궁금했다. 꽤 많은 비에다 과속까지 하고 있어서 앞유리창은 안보였다. 달리는 중에 간간히 손을 내밀어 걸레로 유리창을 닦았다. 몽골의 전사가 말을 타며 일어섰다 활을 쏘고 앉는 것마냥 신기했지만 내 목숨이 걸렸다는 점은 몽골 전사를 티비로 볼 때와는 다른 점이었다.

빠하르간지는 아비규환 같았다. 여행에 많은 정보를 찾아보지는 않지만 인터넷으로 첫날에 겪게될 정보 정도는 찾아보았었다. 혼잡하다는 말은 단어표현을 잘못 선택했거나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이 쓴 글이었던 듯 했다. 처음 겪어보는 수준의 혼잡함이었는데 무엇보다 경적소리가 혼을 빼놓고 차와 툭툭으로 불리는 작은 운반차량들과 사람과 동물이 뒤엏혀있었다. 차량들은 백미러를 부딫혀가며 지나갔다. 택시 플랫폼에서 봤던 사이드미러가 있는 택시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내리자 마자 우의를 꺼내 입었다. 얇은 일회용 우의의 버스럭 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기대감이 올라왔다. 허기도 알아차렸다. 시각이 익숙해지자 다른 욕구들이 치솟았다. 

먹고도 싶고 많은 것을 보고 싶기도 했다. 씻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 남학생이 숙소를 구하며 거기서 씻고 가기로 했다. 마침 한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방을 셰어하겠냐고 했다. 자신은 내일 출국하는 날이고 하루머물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싼방을 구하고 셋이서 들어섰다. 나는 상황이 조금 불편했다. 도미토리라고 생각하면 괜찮은가 싶기도 했다. 여튼 나는 씻고 인사를 하고 다람살라로 향했다.

나는 바쁘게 여행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여행도 근 1달 여정이었고 바쁠 것도 없었다. 여행이 끝날 때 까지도 바쁘게 여행한다는 인식을 못했다. 바쁘게 여행한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느긋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을 때였고 그게 나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도착해서 아침에 테라스에서 양치를 하는데 옆 방 테라스에서 여자가 나와 살짝 놀랐다. 동양계여서 갑자기 한국말이 나왔다. 일본사람이었다. 손짓으로 양치물하고 나오겠다는 시늉을 하고 다시나와서 잠시 이야기를 했다. 같이 아침을 먹으로 나왔다.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여자였는데 나와 동갑이었다. 명상센터에 한달을 머물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직업은 여행글을 잡지사에 기고한다고 했다. 아침은 항상 커피와 토스트로 시작한다고도 했다. 담배를 피는 모습이며 하고 있는 모습고 큰키에 군살없는 맵시까지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유롭다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나는 무얼 먹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 무슨얘기를 했었는지 기억은 나지않지만 자유로운 사고와 일본인 스럽지 않은 영어에 놀랐던 기억이 나고 한글에 대해 관심을 보여 한참을 알려줬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촌스러웠다.

나는 그녀와 비교해보면 마음이 바빴다.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혼자 달라이라마가 있다는 사원을 가고 토라도 돌았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스위스에서 교사를 한다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함께 다녔다. 나는 그의 이름을 결국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했다. 목을 훑는 듯한 ch sh 발음이 들어가는 이름을 나는 기억하지도 못한다.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천천히 절면서 걷는 사람이었다. 토라를 한바퀴 더 돌면서 티벳 여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중국에서 넘어온지는 몇년되지 않았고 구구절절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야기 중에 Chinese Tibet이라는 말을 썼다가 잠깐 정적이 흘러 순간 실수 했다고 느끼고 정정했다.

스위스인은 50대쯤으로 보였다. 느리게 걷는데다가 카페에 앉아 자주 쉬어야 했는데 이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때는 어려서 계속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고 더 많은 것을 봐야하고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들은 여행지 카페에서 느긋하게 움직이지 않고 잘 쉬었다. 책도 읽고 이야기도 오래 나누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여유롭게 보낸 거라 생각했다. 건물 한켠에 기대어 주민과 이야기학 그림그리고 글쓰고 이런 것이 나에게 주는 힐링이고 느긋함이라 여겼다. 바지런히 여행지에서 옮겨다니는 것만 빠쁘게 여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채우는 행위와 관련한 것은 느긋함이 아니었다. 여백에 그림을 그려넣고 써넣고 하는 것은 천천히 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치열하게 채우는 행위를 나는 힐링으로 착각했다.

결국 나는 그 다음 여정지인 레의 중간 기착지인 마날리에서 스위스인과 헤어졌다. 마날리 진입 도로가 유실되어 해 뜨지 않은 새벽에 모두들 버스에서 내렸다. 강물로 유실된 도로에 드럼통을 가져다 놓고 장작불을 피워 놓았다. 불이 너무 커서 지옥불 같았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도로는 젖어있고 공기도 젖어있어 찝찝했다. 예정되지 않은 모험을 나는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이 상황은 마음에 들었다. 

마날리 버스스탠드까지는 30분여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서 레로 가는 길이 끊겼고 언제 다시 연결될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인 몇과 이야기를 나눴다. 스위스인은 수소문해서 사설 집차를 찾았다. 레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미안하다며 몇 일 뒤에 가겠다고 했다. 그가 바빴지만 사실 내가 바빴다. 그와 걸음을 맞추어 걷는 것이 나에게 짐처럼 느껴졌다. 여행에서 그를 건사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후 나는 활기차며 자신감에 넘치고, 바지런한 여행을 마쳤다. 여행 끝날때까지도 몰랐다. 걸음을 맞추어 느리게 가는 것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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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manianio minyoong on 2018.07.25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