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저터널

2006.06.05 16:27
한일해저터널은 못 만드는 것인가? 안 만드는 것인가? 한일해저터널은 일본 규슈 지방과 이키섬, 쓰시마(대마도), 거제도의 장장 235㎞를 연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1980년대 이후 추진돼온 한일해저터널은 터널 입구만 뚫린 채 20여 년째 답보상태다. 하지만 일본 시가(佐賀)현 가라쓰(唐津)에는 한일해저터널연구회가 계속 터널 작업을 하고 있다. 한일해저터널의 출발점이 되는 이 곳에서 지질조사 및 터널 관리 작업을 통해 해저터널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후지하(藤橋) 현장소장은 한일해저터널의 완공을 확신했다. 후지하 소장은 “전문 기술자의 눈으로 봤을 때 한일해저터널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홋카이도(北海道)와 혼슈(本州)간 53.83㎞의 쓰가루 해협을 연결한 세이칸 터널의 기술진 여러 명도 기술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측 사업단 관계자의 설명.
한일해저터널이 연결될 경우 ‘홋카이도-도쿄-후쿠오카-거제도-부산-서울-평양’을 잇는 동아시아 철도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신칸센-KTX-경의선’을 연결하는 셈이다. 해저터널은 양쪽 두 개의 터널에 왕복 철도를 건설하고, 가운데에 있는 나머지 하나의 터널에 전선·유류파이프를 위한 보조터널을 만든다.
당초 이 생각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총재가 1981년 처음으로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 영국까지 2만여㎞를 연결하는 ‘국제하이웨이’를 건설하자는 것. 국가간의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대로 교류를 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전 세계에 ‘마음의 길’을 뚫는 작업은 ‘가장 가까우면서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에서 시작됐다. 출발점은 규슈 북쪽으로 후쿠오카에서는 서쪽에 있다. 이 곳은 역사적으로 한국과는 유래가 깊은 지역. 1592년 조선 침략을 위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곳에 성을 쌓고 전진기지로 삼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당시 1년간 머물기도 했던 곳이다. 나고야(名護屋)성 박물관에는 당시 왜군의 유적과 유물이 보관돼 있다. 한일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유적도 많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거북선도 전시돼 있다.

일본측은 탐사용 터널 400m 뚫어

한일터널의 입구는 나고야 성에서 멀지 않다. 400여 년 전의 침략기지가 현재 한일간 평화도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나고야성의 전망대에 서면 왜군들이 조선을 향해 거쳐간 해로가 펼쳐진다. 이키섬이 눈 앞에 보이고 맑은 날이면 이키섬 너머 쓰시마(대마도)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안내원의 설명. 이 바다 밑으로 해저터널이 뚫린다.
현재 일본측 사업단에서는 한일간 경계지역까지 해저지질 조사를 완료한 상태. 1982년 국제평화고속도로 건설회사(IHCC)를 설립해 이 작업을 계속 추진해왔다. IHCC는 1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한일해저터널의 기술적 가능성을 현실화했다. 이키섬과 쓰시마(대마도) 지역의 해저 지질을 조사, 터널 공사에 적합한 구간을 선택했다.
210m에 이르는 제1단계 시험 굴착공사가 1987년 완성됐다. 추가적인 굴착 공사가 진행돼 제2단계 200m 굴착공사가 1989년 마무리됐다. 현재 탐사용 터널은 해저 400m까지 뚫려 있다. 가정연합의 일본측 관계자는 “일본측 사업단에서 지금까지 120억 엔의 자금을 투여했다”고 말했다.
터널 입구에는 IHCC가 20여 년간 해저지질을 조사하고 터널을 뚫은 각종 장비가 설치돼 있다. 외부에 노출된 일부 시설은 녹이 슬었다. 20여 년째 한일해저터널 사업이 추진됐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 관계자는 “일본측 사업단에서 확보한 땅에만 해저터널이 뚫려 있다”고 말했다. 국가 소유의 땅에는 해저터널을 뚫을 수 없다는 것. 후지하 소장은 “해저터널이 한 나라만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양국의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해저터널을 추진하던 무렵 한국에서도 해저터널 사업이 동시에 추진됐다. 현 학술원 회원인 윤세원 전 선문대 총장이 국제하이웨이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이 단체에서 한국쪽의 지질 조사에 들어갔다. 거제도와 가덕도에서 해저터널 공사에 적합한 지질인지 여부를 조사했다. 거제도와 대마도 사이의 바다밑 지질 조사까지는 하지 못했다. 윤 전 총장은 “비록 바다 밑이 아니라 섬 아래 지질을 조사했지만 일본 측 결과처럼 해저터널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측 해저터널 공사 계획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해저터널을 건설할 재원이 문제로 대두됐다. 양국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재원 조달은 불가능하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종교단체에서 내세운 평화 구상이 현실적으로 건설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정부 나서지 않은 한 재원조달 불가능

윤 전 총장은 “당시 건설비용으로 1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그중 4분의 3은 일본, 나머지 4분의 1은 한국측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235㎞라는 터널 거리에서 한국측의 거리가 4분의 1에 해당된다는 것. 한국측 비용으로는 250억 달러가 소요되는 셈이다.
한일 양국 정부간에는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논의가 수차례 오갔지만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비교적 현실적인 검토단계에까지 들어갔다. 이후 일본 측도 해저터널에 대한 언급이 몇 차례 있었다. 최근 남북간 철도 연결, 러시아 송유관 연결, 해외 관광객 대폭 증가, 세계의 글로벌화 등의 사회 분위기에 맞춰 해저터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측 한 관계자는 “우리쪽에서 실시한 지질조사 연구 결과에 대해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갖고 자료 제공을 요청해온다”고 말했다.

“경제적 효율성 앞으로 더욱 커질 것”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2003년 첫 정상회담에서는 한일 공동관심사의 하나로 한일해저터널 추진이 거론되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양해만 있으면 한일해저터널은 가능하다”면서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도 해저터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윤 전 총장의 주장. 윤 전 총장은 “지금 시작해도 10∼15년 후에 완공되는데 그때에는 해저터널의 경제적 효율성은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지하 소장은 “완공에는 9조6000엔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되며 15년의 건설기간이 필요하다”면서 “일본지도자들도 이 곳에 많이 오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인식해 하루빨리 건설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는 한일해저터널처럼, 미국의 알래스카와 러시아의 시베리아 사이의 베링해를 잇는 해저터널 건설을 추진, 또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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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manianio minyoong on 2006.06.05 16:27